(05/10) '마음에 먼저 새깁니다 — 어버이 주일 아침에' (신명기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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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QT3개월 전1📖 오늘의 본문 — 신명기 6:4-9 (개역개정)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 묵상 도우미
오늘 일요일 아침, 어떤 마음으로 일어나셨는지요. 5월 10일, 일요일이면서 어버이 주일이기도 한 오늘입니다. 이미 그저께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드리고 식사도 함께 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일요일은 부모님께 효도를 드리는 날이라기보다는, 가정 전체를 하나님 앞에 정중히 드리는 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흔 줄에 들어선 부모의 자리는 묘하게 불안한 자리입니다. 아래로는 자녀에게 좋은 것을 물려주고 싶고, 위로는 부모님이 점점 작아지시는 모습을 마주해야 하니까요. 무엇보다 자녀에게 '진짜로 무엇을 물려줘야 할까'라는 질문이 한 번씩 마음을 두드립니다. 좋은 학군, 좋은 학원, 든든한 노후 자금, 다 중요하지요. 그러나 어쩐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이 자꾸 듭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6장은 모세가 광야 사십 년의 끝자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던진 마지막 당부입니다. 가나안 땅 입성이 코앞에 있는 시점이었고, 모세는 자기가 함께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다음 세대를 향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정리해 남기려 한 것입니다. 아무리 풍요로운 땅에 들어가더라도, 가장 먼저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가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본문을 '쉐마'라고 부릅니다. '들으라'를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의 첫음절을 그대로 따온 이름이지요. 지금도 정통 유대인들은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 이 본문을 암송하며, 작은 양피지에 적어 문설주에 붙이는 '메주자'를 손가락으로 짚고 집을 드나든다고 합니다. 한 권의 책이 한 민족을 삼천 년 동안 지탱한 비결, 그것이 바로 이 한 단락에 담겨 있는 셈입니다.
본문에서 모세가 강조하는 동사 두 개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마음에 새기다'에 사용된 결인데요, 단순히 머리에 기억해 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옛 도장 장인들이 도장을 새길 때 한 글자씩 깊게 파 들어가던 그 '새김'에 가까운 결입니다. 한 번 새겨지면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어디에 찍어도 같은 흔적을 남기는 그런 새김 말입니다.
두 번째는 '부지런히 가르치며'의 히브리어 '샤난'(שָׁנַן)입니다. 이 단어의 본래 결은 '날카롭게 갈다, 예리하게 다듬다'입니다. 칼을 숫돌에 갈 때 한 번에 끝나지 않듯이, 신앙을 자녀에게 새기는 일도 한 번의 큰 사건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마찰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뜻을 담고 있지요. 그러니 모세가 이어서 말한 '집에 앉았을 때, 길을 갈 때, 누워 있을 때, 일어날 때'라는 네 장면은 바로 그 일상의 마찰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번 멈추어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 있습니다. 모세는 '시간을 따로 떼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한 주에 한 번'도 아니고 '하루에 한 시간'도 아닙니다. 그저 일상의 모든 결마다 자연스럽게 말씀이 흘러나오게 하라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신앙 교육은 별도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부모의 일상 그 자체라는 의미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서 배우는 것은 부모가 가르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부모가 살아낸 그 모습이라는 정직한 진리가 여기에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더 깊이 들여다보면, 본문이 자녀 교육보다 먼저 강조하는 것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 보입니다. 7절보다 앞선 6절입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가르치기 전에 먼저 부모 자신의 마음에 새기라는 것이지요. 부모의 마음에 새겨진 것만이 자녀의 마음으로 흘러간다는, 무겁지만 정직한 진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 최근 설교에서 만난 말씀
지난 어린이 주일에 남서울은혜교회 박완철 목사님께서 '하나님께 맡겨진 자녀'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전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자녀를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주신 청지기의 자리'로 보아야 한다고 짚으셨지요. 부모가 자녀를 자기 작품으로 만들려 할 때 가정에 갈등이 시작되지만,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부모도 자기 자리를 찾게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던지신 한 문장이 마음에 길게 남았습니다. '자녀를 잘 키운다는 것은, 자녀를 내 손에서 하나님 손으로 정중히 옮겨드리는 일입니다.' 신명기 6장의 모세도 같은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자기 손에 쥐고 가나안에 함께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손에 정중히 옮겨드린 것이지요. 어버이 주일 일요일 아침에 이 한 줄이 깊이 다가옵니다. 부모의 가장 큰 사명은 자녀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때에 정성스럽게 놓아드리는 일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어버이 주일 일요일 아침 솔직히 고백합니다. 부모로서 산다는 것이 자주 무겁습니다. 좋은 것을 주고 싶지만 무엇이 진짜로 좋은 것인지 자주 길을 잃고, 사랑하지만 그 사랑하는 방식이 자주 어긋납니다. 자녀에게 신앙을 전해야 한다는 부담은 마음 한 켠에 늘 있는데, 정작 제 자신부터 말씀이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멈추어 섭니다. 모세가 가나안 입성을 앞둔 다음 세대에게 가장 먼저 당부한 말씀이 '먼저 너 자신의 마음에 새기라'였다는 사실이 마음을 두드립니다. 자녀를 가르치기 전에 저 자신의 마음에 말씀을 깊이 새겨주십시오. 도장처럼 한 번 새기면 지워지지 않는 그런 새김으로, 제 일상 곳곳에서 같은 흔적이 자연스럽게 묻어나게 하소서.
저희 가정에 매일의 작은 마찰점들이 많습니다. 식탁에서, 등굣길에서, 잠자리에서, 그리고 다시 일어나는 아침에 말이지요. 그 모든 작은 자리마다 거창한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억하는 작은 한마디, 따뜻한 한 행동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하소서. 자녀를 제 작품으로 만들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자녀가 본래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매일 새롭게 받아들이게 하소서.
저의 부모님도 마음에 가져옵니다. 그분들이 평생 마음에 새기며 살아오신 말씀이 제 안에 흘러들어 와 오늘의 저를 만들었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그 흐름이 제 자녀에게로, 또 그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하소서. 5월 둘째 주 일요일 오늘, 우리 가정 전체를 주님 앞에 정중히 옮겨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 말씀을 삶으로
- 일요일 예배 후 가족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오늘 들은 말씀 한 구절을 함께 나눠 보세요. 거창한 해석이 아니라 '내 마음에 남은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어른도 한마디, 자녀도 한마디. 그 작은 마찰이 본문이 말하는 '샤난'(날카롭게 갈다)의 자리입니다.
- 이번 주 동안 자녀에게(혹은 부모님께) 한 번이라도 짧은 기도 한 줄을 직접 들려주세요. '오늘 우리 ○○이 잘 자고, 내일 학교 가는 길도 평안하게 지켜주세요.' 정도면 충분합니다. 자녀의 마음에 새겨지는 것은 부모의 멋진 설교가 아니라, 부모가 직접 입으로 부르는 그 작은 기도이니까요.
- 오늘 한 번 가족 단톡방에 시편 한 구절을 짧게 올려 보세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1)' 같은 한 줄이면 좋겠습니다. 본문이 말한 '문설주에 기록하라'의 오늘날 적용입니다. 매일은 부담이니, 오늘 한 번부터 가볍게 시작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 댓글로 아멘 한마디, 오늘의 QT 다짐을 나눠주세요! 함께 묵상하고 함께 성장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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