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05/09) '두려움보다 큰 빛 — 토요일 아침의 한 줄' (시편 27:1)

매일QT3개월 전1
📖 오늘의 본문 — 시편 27:1 (개역개정)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 묵상 도우미 오늘 아침, 어떤 마음으로 일어나셨는지요. 5월 둘째 주 토요일입니다. 어제는 어버이날이라 분주했고, 그 전 주는 어린이날 연휴로 떠들썩했지요. 그리고 이제 한 주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잠시 멈추어 안을 들여다보면, 마음 한 켠에 정리되지 않은 어떤 무게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느끼실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님의 굽은 어깨를 보고 온 마음, 자녀에게 여전히 미안한 마음, 그리고 남은 5월의 일정표 앞에서 살짝 한숨이 나오는 마음 같은 것들 말입니다. 마흔, 쉰을 지나는 이 자리는 묘하게 두려움이 잘 자라는 자리입니다. 청년 때처럼 몰라서 무모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노년처럼 다 내려놓을 수도 없는 자리지요. 알 만큼 알기에 더 무섭고, 책임질 것이 많기에 더 조심스럽습니다. 새벽에 잠이 깨면 부모님 건강이 떠오르고, 아이의 진로가 떠오르고, 통장 잔고가 떠오르며, 마지막에는 한 줄의 깊은 생각이 올라옵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오늘 본문 시편 27편은 바로 그런 자리에서 다윗이 부른 노래입니다. 흔히 다윗의 시편이라고 하면 광야의 청년 다윗을 떠올리지만, 27편의 분위기는 조금 다릅니다. 학자들은 이 시편의 배경으로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던 시기, 혹은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망쳐야 했던 노년기를 함께 꼽습니다. 두 시기 모두 다윗에게는 '안전한 자리가 어디에도 없는' 시간이었지요. 그가 노래한 것은 아무 일 없는 평온의 노래가 아니라, 적군이 진을 친 한복판에서 부른 노래입니다(3절). 그런 다윗이 시편의 첫 줄에서 정직하게 외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이 한 줄이 가벼운 자기 다짐이었다면 그 무게가 이렇게 깊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두려움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지요. 그는 두려움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두려움보다 더 큰 빛 한 자락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빛 앞에 자기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본문의 단어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려움을 가리키는 단어가 둘이나 나란히 등장하지요. '두려워하리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야레'(ירא)인데요, 이 단어는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일반적인 두려움을 가리킵니다. 비유하자면 새 직장 첫 출근 날 아침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 결의 두려움이지요. 반면 '무서워하리요'는 '파하드'(פחד)라는 단어로, 갑작스럽게 가슴을 쳐오는 충격에 가까운 공포입니다. 한밤중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심장이 내려앉는 그 결의 공포라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다윗은 일부러 이 두 단어를 함께 사용합니다. '잔잔한 두려움'도 '갑자기 덮쳐오는 공포'도 둘 다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이 둘 모두를 빛 앞에 내려놓습니다. 인생에 두 종류의 두려움이 있다면, 그 두 종류 모두를 다스리실 분이 우리 곁에 계신다는 선언이지요. '빛'이라는 단어도 흥미롭습니다. 히브리어 '오르'(אוֹר)는 단순히 조명이 켜지는 그런 빛이 아닙니다. 창세기 1장 첫 페이지에 나오는, 어둠을 가르며 처음으로 세상에 들어선 그 빛입니다. 새벽 산책길에 동쪽 하늘이 슬며시 옅어지면서 어둠이 자기도 모르게 물러서는 그 풍경을 떠올리시면 좋겠습니다. 빛이 어둠과 싸우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 자리에 들어서면, 어둠은 자연스럽게 비켜섭니다. 그것이 다윗이 고백한 '나의 빛'이지요. '구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예샤'(יֵשַׁע)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름 '예수'와 같은 어근에서 나온 단어인데요, 본래의 결은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끌어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음이 좁아지면 두려움은 더 커집니다. 같은 일도 다른 길이 보이지 않으니 더 무겁게 느껴지지요. 그러나 누군가 손을 잡고 좁은 골목에서 너른 들판으로 데려다 놓으면, 같은 짐이라도 무게가 달라집니다. 다윗이 만난 구원은 그런 결의 구원이었습니다. 💬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께서 지난 주일 사무엘상 17장을 본문으로 '하나님께 사로잡힌 상상력'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전하셨습니다. 목사님은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을 '거룩한 상상력'에서 찾으셨지요. 이스라엘 군인들은 골리앗이 너무 커 보여서 자기 자신을 메뚜기로 여겼지만, 다윗은 골리앗 너머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기에 골리앗이 작아 보였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던지신 한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여러분, 골리앗을 보면 자기가 메뚜기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보면 골리앗이 메뚜기가 됩니다.' 시편 27편의 다윗이 부른 노래도 같은 자리에서 흘러나온 노래였습니다. 두려운 일이 작아져서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다스리실 분이 너무 크시기에 노래가 절로 흘러나온 것이지요. 토요일 아침에 이 한 줄이 깊이 와닿습니다. 두려움을 없애려 애쓰는 신앙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안고 빛 앞에 서는 신앙이 진짜 신앙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토요일 아침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한 주를 돌아보니 마음에 정리되지 않은 무게가 너무 많습니다. 부모님께 다하지 못한 효도가 마음에 걸리고, 자녀에게 짜증을 낸 어제 저녁이 자꾸 떠오르며, 다음 주 출근길에서 마주할 일들이 벌써부터 무겁게 느껴지는 아침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자리는 자주 무섭습니다. 다 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데, 안에서는 무너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런 자리니까요. 오늘 본문 앞에 멈추어 섭니다. 다윗이 적군이 진을 친 한복판에서 부른 노래가 오늘 제 마음에 들립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두려움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 두려움보다 더 큰 빛이 자기 곁에 있음을 알았기에 부른 노래였다는 사실이 오늘 저를 일으켜 세워 줍니다. 저도 자주 메뚜기처럼 저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골리앗 같은 일들 앞에서 작아지고, 사람들의 평가 앞에서 위축되고, 마흔이 넘은 나이가 어쩌면 늦은 것은 아닌지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분명히 깨닫습니다. 골리앗을 보면 제가 메뚜기가 되지만, 주님을 보면 그 골리앗이 메뚜기가 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제 시선의 방향을 바꾸어 주십시오. 문제의 크기가 아니라 주님의 크기를 보게 하소서. 5월 9일 토요일 오늘, 한 주를 마무리하며 제 두려움을 솔직하게 빛 앞에 가져옵니다. 잔잔히 흐르는 일상의 두려움도, 갑작스럽게 덮쳐오는 큰 공포도, 모두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좁은 마음에서 너른 들판으로 저를 끌어내어 주시고, 내일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그 빛을 다시 한 번 깊이 만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 말씀을 삶으로 오늘 종이 한 장에 마음을 무겁게 하는 두려움 한 가지를 솔직하게 적어 보세요. 다 적었으면 그 문장 위에 큰 글씨로 시편 27:1을 써 보세요. 두려움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빛 한 줄을 덮어두는 시간입니다. 종이는 다음 주에 다시 펼쳐 보시면 좋겠습니다. 토요일 저녁 10분만 휴대폰을 두고 동네 한 바퀴를 천천히 걸어 보세요. 노을이 지는 시간이라면 더 좋습니다. 빛이 어둠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 자리에 들어서는 풍경을 직접 눈으로 따라가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신앙의 빛도 그렇게 우리 마음에 자리 잡습니다. 오늘 곁에 있는 한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고맙다'고 한마디 건네 보세요. 배우자든 자녀든 부모님이든 좋습니다. 두려움이 클수록 우리는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잊기 쉽습니다. 한마디 감사가 자기 안의 두려움보다 자기 곁의 사랑을 먼저 떠올리게 해줍니다. ✍️ 댓글로 아멘 한마디, 오늘의 QT 다짐을 나눠주세요! 함께 묵상하고 함께 성장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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