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05/07) '포장을 벗습니다 — 부스러기 한 조각이면 충분합니다' (마가복음 7:28)

매일QT4개월 전0
📖 오늘의 본문 — 마가복음 7:24-30 (개역개정)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 묵상 도우미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5월의 첫 목요일, 내일은 어버이날이고 모레는 토요일입니다. 가정의 달 한복판에서 우리가 가장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이 무엇인지 한번 떠올려 보시겠어요. 어쩌면 그 답은 '괜찮아요'가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님께도, 자녀에게도, 배우자에게도, 직장 동료에게도 우리는 자주 그렇게 말합니다. '나는 괜찮다'고요. 그런데 거울 앞에 서서 솔직히 묻는다면, 정말 괜찮으신지요. 오늘 본문은 그 '괜찮은 척'이라는 두꺼운 옷을 한 꺼풀씩 벗기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사역을 잠시 떠나 두로 지방으로 들어가십니다. 두로는 갈릴리 북서쪽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인데요, 당시로 보면 이방인의 땅이자 페니키아 문화권의 가장 세련되고 풍요로운 곳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정통 유대인 시각에서는 '저기까지 가시다니' 하고 의아할 만한 발걸음이었지요. 그곳에서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본문은 그녀의 신분을 굳이 두 번 강조합니다.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풀어 말하면 '문화적으로는 헬라인이요, 혈통적으로는 시리아-페니키아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더 쉽게 말하면, 당시 유대인이 가장 멀게 여기던 사람입니다. 종교도 다르고, 핏줄도 다르고, 언어도 달랐으니까요. 그런 여인이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립니다. 자신의 화려한 도시 배경, 헬라 문화권의 자존심, 어머니로서의 체면을 한꺼번에 내려놓고 말이지요. 왜 그랬을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자식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되어 본 분이라면 아실 겁니다. 자식의 고통 앞에서는 모든 포장이 한순간에 바닥에 나동그라진다는 사실을요. 여기서 한 단어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개'라는 표현 — 헬라어로 '퀴나리온'(κυνάριον)이라는 단어인데요, 길거리 들개를 가리키는 '퀴온'(κύων)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퀴나리온'은 '집 안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작은 강아지'를 뜻하는 애칭에 가까운 말이지요. 비유하자면 식탁 곁에서 주인의 발치를 맴도는 어린 강아지의 풍경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처음 들었을 때 느낄 법한 차가운 거절이 아니라, 오히려 '식탁 안의 가족'이라는 친밀한 그림 안에서 던져진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인은 그 비유의 결을 정확히 알아챕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부스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프시키온'(ψιχίον) — 빵 한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온 가장 작은 조각을 가리킵니다. 여인은 자신을 식탁 위 자녀와 동등한 자리에 세우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식탁 곁의 작은 강아지로도 충분하다고 고백하지요. 왜냐하면 부스러기 한 조각이라도, 그것이 주님의 식탁에서 떨어진 것이라면 자기 딸을 살리기에 모자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신앙은 거창한 자격 증명이 아니라 정확히 자기 자리를 아는 자의 겸손이었습니다. 💬 최근 설교에서 만난 말씀 더사랑의교회 김상훈 목사님께서 지난 주일 바로 이 본문을 가지고 '포장 없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전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이 여인의 가장 놀라운 점이 그녀의 뛰어난 말솜씨나 영리한 처세가 아니라 '자기 포장을 한 겹 한 겹 벗어낸 자세'였다고 짚으셨지요. 우리는 자주 하나님 앞에서도 '괜찮은 척'을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정돈된 마음, 깨끗하게 정리된 회개, 흠 없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아 정작 가장 솔직한 고백 앞에서 멈춰 선다는 것이지요. 목사님의 한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괜찮은 척하는 한, 우리는 결코 괜찮아질 수 없습니다. 풍성한 은혜는 늘 포장이 벗겨진 자리에 임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기 배경을 자랑하지도, 자기 의를 내세우지도, 자식의 슬픔을 감추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주여, 부스러기 하나면 됩니다' 하고 엎드렸을 뿐인데, 바로 그 자리에서 풍성한 은혜가 흘러나왔지요.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오늘 아침 솔직히 고백합니다. 저는 너무 자주 '괜찮은 척'으로 살아왔습니다. 부모님께는 다 큰 자식의 의젓함을 보여드려야 한다며 힘든 속을 감추었고, 자녀 앞에서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어깨에 힘을 주었으며, 직장에서는 무너지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 가면을 단단히 조여 왔습니다. 가정의 달이라는 5월의 한복판에서, 정작 가장 솔직해야 할 분 앞에서도 저는 종종 포장된 모습으로 나아왔다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멈추어 섭니다. 자식의 고통 앞에서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주님의 발 아래 엎드린 한 여인의 모습이 제 안에 깊이 박혔습니다. 그녀는 자기 자격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고, 다만 부스러기 하나면 충분하다는 가난한 고백 하나로 풍성한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 앞에서요. 내일이 어버이날이고, 다음 주는 또 한 주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 5월에 제 마음의 두꺼운 포장지를 한 꺼풀씩 벗게 하소서. 멀쩡한 척 들고 있던 미소를 잠시 내려놓고, 주님 앞에서 그저 '저는 사실 안 괜찮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부스러기 한 조각이라도 주님의 식탁에서 떨어진 것이라면 제 인생을 살리기에 충분하다는 그 가난한 신앙으로 오늘을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 말씀을 삶으로 1. 오늘 하루, 가장 가까운 한 사람에게 '사실은 나 요즘 좀 힘들어'라고 짧게라도 솔직하게 말해 보세요. 포장은 가까운 사이에서 가장 두껍게 쌓입니다. 2. 기도할 때 멋있게 들리는 표현 대신 가장 정직한 한 문장 — '주님, 저는 사실 이렇습니다' — 으로 시작해 보세요. 부스러기 하나의 자리는 그 한 줄 앞에서 열립니다. 3. 잠들기 전 오늘 하루 내가 어떤 포장을 입고 있었는지 한 줄로 적어 보세요. 답을 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그 포장을 알아챈 것만으로도 내일은 반 걸음 다른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 댓글로 아멘 한마디, 오늘의 QT 다짐을 나눠주세요! 함께 묵상하고 함께 성장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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