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6) '저 산을 내게 주소서 — 인생 후반에도 새 출발은 가능합니다' (여호수아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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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QT4개월 전1📖 오늘의 본문 — 여호수아 14:10-12 (개역개정)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이제 내가 오늘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날에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 묵상 도우미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5월의 첫 주가 지나고 어린이날의 떠들썩함도 가라앉은 수요일 아침입니다. 가정의 달이라는 이름이 어쩐지 무겁게 느껴지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자녀에게는 부모로서, 부모님께는 자녀로서 — 양쪽에서 오는 기대를 동시에 감당하는 자리에 있는 분이라면 더욱 그러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깊은 한숨이 나는 자리가 있습니다. 거울 앞에 섰을 때입니다. '내 인생에 이제 새로운 일은 더 없겠지' 하는 생각이 슬며시 마음을 누릅니다. 직장에서는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고,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다 컸으며, 몸은 예전 같지 않고, 통장은 늘 빠듯합니다. '여기까지가 내 자리인가' 하는 묘한 체념이 익숙해질 즈음, 오늘 본문이 그 체념의 한복판에 갈렙이라는 한 사람의 외침을 던져 넣습니다.
갈렙은 무려 여든다섯 살이었습니다. 사십오 년 전,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보냈을 때 동행했던 열두 명 중 두 명만이 살아남았는데, 갈렙은 그중 한 사람이었지요. 광야에서 사십 년, 가나안에 들어와 다시 다섯 해를 보내고서야 그는 비로소 자기 몫의 땅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배경적으로 이때는 가나안 정복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던 시점입니다. 사람들은 평지에 자리를 잡고 안식을 누리려는 분위기였지요. 그런데 갈렙은 모두가 꺼리던 '산지' — 가장 험하고 거대한 아낙 자손이 살던 헤브론 산지 — 를 자기 몫으로 달라고 요청합니다. 푹 쉬고 싶을 노년의 나이에 말이지요.
여기서 한 단어가 특별히 마음에 박힙니다. '오늘'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욤'(הַיּוֹם)인데요, 이 짧은 본문에서 갈렙은 '오늘'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두 번 반복합니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라고 말이지요. 어제 받은 약속이 아직 살아 있고, 내일을 더 기다릴 필요도 없으며, 정확히 오늘 그 약속을 받겠다는 결단을 한 단어로 압축한 것입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이런 풍경입니다. 사십오 년 전 친구에게 받은 약속의 편지를 늘 가슴에 품고 살아온 사람이, 마침내 그 친구를 만났을 때 손에 든 편지를 펼쳐 보이며 '나, 오늘 이 약속 받겠소' 하고 말하는 것이지요. 갈렙의 신앙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오늘'이라는 점에 정확히 찍히는 작살 같은 신앙이었습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이 있습니다. 갈렙은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그들을 쫓아내리이다'(여호수아 14:12)라고 고백합니다.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 이 표현이 묘합니다. 확신이 아닌 듯하면서도, 사실은 가장 깊은 확신의 표현이지요. 결과를 손에 쥐고 출발하지 않겠다는 것, 다만 동행만을 의지하겠다는 것 — 이것이 노년의 갈렙이 도달한 신앙의 깊이였습니다.
본문은 갈렙이 자기 힘을 자랑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가 '나의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고 말한 것은 자랑이 아니라 증언입니다. 사십오 년 동안 그를 살려두신 하나님에 대한 증언이지요. 그는 자기 힘으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그를 살려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평촌드림교회 조정환 목사님께서 지난 주일 바로 이 본문을 가지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목사님은 갈렙의 신앙에서 가장 놀라운 점이 '체력'이 아니라 '시선의 방향'이라고 짚으셨지요. 사십오 년 동안 광야의 많은 동료들이 약속을 잊어버렸는데, 갈렙만은 그 약속을 한 번도 마음에서 내려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한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갈렙은 산지를 정복할 힘이 있어서 산지를 구한 것이 아니라, 산지를 구할 만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기 때문에 힘이 따라온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내가 강건해지면 그때 도전하겠다'고 말하지만, 갈렙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지금 가겠다'고 결단한 것이지요. 순서가 정반대입니다.
💬 최근 설교에서 만난 말씀
평촌드림교회 조정환 목사님 —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갈렙은 산지를 정복할 힘이 있어서 산지를 구한 것이 아니라, 산지를 구할 만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기 때문에 힘이 따라온 것입니다.' 사십오 년 동안 약속을 한 번도 마음에서 내려놓지 않은 갈렙의 시선의 방향이,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바라보며 걸어왔습니까?'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오늘 아침 솔직히 고백합니다. 저는 자주 '이 정도가 제 자리일 것이다' 하는 체념의 안경을 쓰고 살아왔습니다. 새로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늦었고, 산지에 오르기에는 다리에 힘이 없으며, 약속을 떠올리기에는 너무 오래되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왔지요. 그렇게 안전한 평지에 자리를 잡고, 오늘이라는 단어를 자꾸 내일로 미뤄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앞에서 갈렙의 외침을 듣습니다. 여든다섯의 노인이 사십오 년 전 받은 약속을 손에 들고 '오늘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고 외치는 그 모습이 가슴을 칩니다.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약속을 잊지 않았기에 강건했다는 사실이, 저의 변명을 부끄럽게 합니다.
5월의 첫 수요일, 가정의 달의 한복판에서 제 마음의 산지를 다시 바라보게 하소서. 미루어 두었던 한 통의 전화, 다시 펴지 못한 성경의 한 장, 멈춰버린 어떤 기도의 자리 — 그 산지를 오늘 다시 주께 청하게 하소서. 결과를 손에 쥐고 출발하지 않게 하시고, 다만 주님과의 동행만을 의지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 말씀을 삶으로
1. 오늘 하루, 그동안 '나중에 하지' 하며 미뤄두었던 한 가지 일을 떠올려 보시고, 단 한 통의 전화나 한 줄의 메시지로 '오늘' 시작해 보세요. 갈렙의 '하욤'은 거창한 출발이 아닌, 작은 한 걸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 이틀 뒤가 어버이날입니다. 부모님이나 인생의 어른께 '제가 여기까지 살아온 것은 어머니/아버지 덕분입니다'와 같은 한 문장을 미리 보내 보세요. 우리의 오늘도 누군가의 사십오 년 위에 서 있습니다.
3. 잠들기 전 '내 인생에서 아직 정복하지 못한 산지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미루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한 줄로 적어 보세요. 답을 내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오늘' 그 질문 앞에 머물러 본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 댓글로 아멘 한마디, 오늘의 QT 다짐을 나눠주세요! 함께 묵상하고 함께 성장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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