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5) '어린 아이를 안으시는 손 — 어린이날 아침 다시 듣는 한 마디' (마가복음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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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QT4개월 전1📖 오늘의 본문 — 마가복음 10:13-16 (개역개정)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 묵상 도우미
오늘이 어린이날이지요. 거리에는 작은 손을 잡고 나선 가족들이 가득할 것이고, 식탁에는 평소보다 조금 화려한 메뉴가 오를 것이고, 또 어떤 분들은 자녀의 어릴 적 사진을 들춰 보며 짧은 한숨을 내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컸나" 하는 그 한 마디 안에는 기쁨과 회한이 함께 섞여 있지요.
오늘 본문은 길이는 짧지만 묵상하기에 무게가 만만치 않은 장면입니다.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께 옵니다. 그저 "한 번만 만져 주세요" 하는 마음이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자들이 막아섭니다. 그리고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 예수님께서 '노하셨다'고 본문은 분명하게 적고 있어요.
이 부분에서 잠시 멈춰 봅시다. 왜 노하셨을까요.
당시 1세기 유대 사회에서 어린 아이는 사회적 지위가 거의 없는 존재였습니다. 율법 공부를 시작하기엔 너무 어렸고, 가족 안에서도 의사결정의 자리에 끼지 못했지요. 그래서 제자들이 막아선 것은 어쩌면 너무도 '상식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중요한 가르침을 펼치시는 중이야, 아이들 데리고 오면 안 되지." 우리 시대 회사로 옮겨 보면, 임원 회의실에 인턴이 들어오려 할 때 "지금은 안 돼요"라고 막는 것과 비슷한 풍경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상식'에 분개하신 것이지요. 본문에서 '노하시어'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 '아가나크테오'(ἀγανακτέω)인데요, 가벼운 짜증이 아니라 깊은 분개를 뜻합니다. 가치 체계가 뒤집힐 때 새어 나오는 강한 감정이지요.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결정적입니다.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여기서 '용납하라'(ἄφετε, 아페테)는 단순한 허락이 아니라 '길을 열어주라', '풀어주라'는 적극적인 동사입니다. 막아 선 사람들에게 그저 "비켜라"가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길을 내주어라"라고 명령하시는 셈이지요.
그리고 한 단어를 더 보고 싶습니다. 15절에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δέξηται, 데크세타이) 않는 자는…"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받들다'는 '데코마이'(δέχομαι) 동사입니다. 손님을 두 손으로 영접하는 그림을 가진 단어이지요. 즉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잡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가 두 손을 펼쳐 선물을 받듯이 받아들여야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풀어 보면 이렇습니다. 회사 사장이 임원회의 중에 들어온 인턴을 보고 "쫓아내지 마, 그 친구가 오늘 가장 중요한 손님이야"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회의실 분위기가 한순간에 멈출 것입니다. 우리가 매겨놓은 '중요한 사람'의 순서표가 통째로 뒤집히는 순간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정확히 그 일을 하신 셈입니다.
여기서 우리 마음이 가만히 멈춥니다. 어른은 너무 많은 것을 '쥐고' 살지요. 계산, 자존심, 통제, 평판 — 두 손이 비어있을 틈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는 다릅니다. 손에 가진 것이 없기에 모든 것을 받을 수 있고, 의심하지 않기에 신뢰할 수 있고, 계산이 없기에 사랑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지요.
지난 주일 한성교회 도원욱 목사님께서 어린이주일을 맞아 '하나님의 선물, 그 이름은 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자녀를 우리의 소유나 인생의 성취 트로피로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잠시 우리 곁에 맡겨주신 가장 귀한 선물로 다시 보자는 권면이었지요. 부모는 자녀를 '키우는' 사람이기 이전에 자녀와 함께 '자라는' 사람이라는 한 마디가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안고 축복하신 그 장면과, 도원욱 목사님의 '맡겨진 선물'이라는 메시지가 정확히 한 줄에 놓이지요.
어린이날 아침, 우리에게는 두 가지 회복이 필요합니다. 곁에 있는 작은 사람을 다시 '예수님의 손이 머무는 자리'로 바라보는 회복, 그리고 우리 안의 '어린 아이됨' — 두 손을 비우고 받는 자리 — 을 회복하는 일이지요. 부모이든 아니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이 회복은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 최근 설교에서 만난 말씀
지난 주일 한성교회 도원욱 목사님의 '하나님의 선물, 그 이름은 아이' 설교 — 자녀는 키워야 할 과제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라는 메시지가 어린이날 아침의 본문 한 장면과 그대로 만납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어린이날 아침에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저는 너무 오래 어른으로만 살아왔습니다. 손에 너무 많은 것을 쥐고, 머릿속에 너무 많은 계산을 굴리며, 누군가를 '중요한 사람'과 '덜 중요한 사람'으로 줄 세우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처럼, 저도 모르게 누군가를 막아서며 "지금은 안 돼"를 너무 자주 말해 왔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노하시며 하신 그 한 마디를 깊이 받습니다.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제 곁의 작은 사람들 — 자녀이든, 후배이든, 아직 미숙한 누구이든 — 그들이 주님께 다가가는 길을 제 상식과 효율과 자존심으로 막아서지 않게 하소서. 또한 제 안에 잠들어 있는 '어린 아이됨'을 다시 깨워 주소서. 두 손을 비우고, 주님의 은혜를 그저 받는 자리로 돌아가게 하소서.
가정의 달, 어린이날의 햇살 속에서 우리 곁의 작은 손을 다시 잡게 하시고, 그 작은 손 너머에 계신 예수님의 큰 손을 함께 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 말씀을 삶으로
1. 오늘 어린이날, 곁에 있는 자녀나 조카, 또는 평소 챙기지 못한 어린 친척에게 짧은 메시지나 전화로 "네가 우리에게 선물 같은 사람이야"라는 한 마디를 직접 전해 보세요.
2. 잠들기 전 두 손을 펼쳐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오늘 제가 쥐고 있던 것을 잠시 내려놓습니다" 하고 한 줄로 기도해 보세요. 어린 아이의 자세를 몸으로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3.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작고 약한 자리에 있는 한 사람(병중인 분, 외로운 이웃, 도움이 필요한 어린 영혼)을 떠올리며 그분을 위해 짧은 중보기도 한 줄을 올려 보세요.
✍️ 댓글로 아멘 한마디, 오늘의 QT 다짐을 나눠주세요! 함께 묵상하고 함께 성장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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