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0) '같이 자라게 두라 — 빨리 뽑으려는 손을 잠시 멈추는 자리' (마태복음 13: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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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QT4개월 전0📖 오늘의 본문 — 마태복음 13:28-30 (개역개정)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 묵상 도우미
목요일 아침입니다. 4월의 마지막 날, 한 장의 달력이 또 한 칸 넘어가는 자리에 서 계시지 않으십니까. 회사에서, 학교에서, 어쩌면 단톡방 안에서도 — 누군가의 한 면이 자꾸 눈에 띄어 답답해지는 그 마음 한 자리가 있으시지요. 저 사람만 좀 정리되면, 이 한 가지만 빠지면 우리 팀이, 우리 모임이, 우리 가족이 훨씬 건강해질 텐데 — 그 생각이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자리에 서 있는 우리에게 한 농부와 종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주인은 분명 좋은 씨를 뿌렸지요. 그런데 밤사이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습니다. 곡식이 자라기 시작하니 잡초도 같이 머리를 내밉니다. 그것을 본 종들의 첫 반응은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 "주인님, 저희가 가서 뽑을까요?" 의욕적이고, 책임감 있고, 빨리 깨끗하게 만들고 싶은 그 마음 — 우리도 매일 같은 마음으로 살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인의 답이 의외입니다. "가만 두라." 한 줄짜리 명령인데 이 한 줄이 그렇게 무겁습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된다고 하시지요. 그러니 둘 다 추수 때까지 같이 자라게 두라고 하십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한 밭에서 한동안 같이 사는 것을 허락하신다는 말씀이지요.
여기서 본문의 한 단어가 마음에 가만히 와닿습니다. 주인이 사용한 헬라어 동사 '아피에미'(ἀφίημι)는 그저 "내버려 둬라"의 뜻이 아닙니다. 본래 이 단어는 "놓다, 풀어 주다, 허용하다"라는 뜻을 함께 담고 있어서, 신약 다른 본문에서는 죄를 '용서하다'고 번역될 때도 똑같이 쓰이는 단어이지요. 그러니까 주인의 "가만 두라"는 무관심한 방치가 아니라 — 추수 때까지 견뎌 주는, 일종의 신중한 용서에 가까운 결단인 것입니다.
쉽게 풀어 드리겠습니다. 가라지의 헬라어 '지자니아'(ζιζάνια)는 우리말로 그냥 잡초가 아니라 '독보리'라는 식물입니다. 자라기 전에는 밀과 거의 구별이 안 되어서, 농부도 이삭이 패기 전에는 어느 쪽이 진짜 곡식인지 확신할 수가 없는 풀이지요. 다 자라야, 추수 때가 되어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식물 — 그것이 가라지입니다.
이 사실 한 가지가 본문 전체를 다시 보게 합니다. 종들이 빨리 뽑고 싶었던 그 이유, 정의감으로 가득 찼던 그 의욕은 사실 한 가지 위험한 전제 위에 서 있었지요. "내가 알아본다." 내가 어느 게 가라지인지 안다는 자신감이었습니다. 주인은 바로 그 자리에서 한 박자 쉬어 주십니다. 네가 알아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너도 모를 수 있다고. 진짜 식별은 추수 때, 곧 마지막 그 자리에서 비로소 분명해지는 일이라고 말이지요.
💬 최근 설교에서 만난 말씀
더사랑의교회 이인호 목사님께서 지난 4월 19일 주일에 바로 이 본문, 마태복음 13장 가라지 비유로 '죄를 제거하려다 공동체를 잃다'라는 제목의 설교를 전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이 비유에서 가장 무서운 함정이 '의로움 그 자체'가 아니라 '의로움이 폭주하는 그 순간'이라고 짚으셨지요. 가라지를 뽑겠다는 종들의 마음은 분명 옳은 마음이었지만, 그 옳음이 한 발 빨라지는 순간 곡식까지 뽑혀나간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한 문장이 오래 남았습니다. "내가 옳다는 확신이 가장 강할 때, 옆 사람의 곡식이 가장 위험합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죄를 미워한다는 명분으로 사람을 다치게 하지요. 한 사람을 정리하려다 한 공동체를 잃습니다. 주인의 "가만 두라"는 죄를 사랑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추수의 권한을 자기 손에 쥐려는 우리의 성급함을 말리시는 말씀이라는 것이지요.
🙏 오늘의 기도
하나님, 4월의 마지막 날 아침을 열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저는 누군가의 가라지가 너무 잘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회사에서 한 동료의 단점, 단톡방에서 한 사람의 어긋남, 가족 중 누군가의 약점 — 그 한 자리만 정리되면 모든 것이 나아질 것 같은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주님, 그런데 오늘 본문 앞에서 마음이 멈춰집니다. 제가 그렇게 빨리 뽑으려던 그 손이, 사실은 곡식 한 포기를 함께 뽑아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제가 알아본다고 자신했던 그 판단이, 사실은 다 자라기도 전에 잘라 낸 것은 아닐까. 그 한 번의 성급함이 한 사람의 신앙과 한 공동체의 따뜻함을 얼마나 다치게 했는지 이제야 보입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서 가라지가 보일 때 — 회사 회의에서, 단톡방에서, 가족 식탁에서 — 빨리 뽑으려는 그 손을 잠시 거두게 해 주십시오. "가만 두라"는 그 한마디를 제 마음의 가장 시끄러운 자리에 놓아 주십시오. 추수의 권한은 주님께 있고, 저의 자리는 옆에서 같이 자라며 인내하는 자리임을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 말씀을 삶으로
1. 출근길 또는 등굣길에 오늘 가장 거슬리는 한 사람을 가만히 떠올려 보세요 — 그리고 그 사람의 한 가지 장점, 단 하나라도 의식적으로 찾아 메모장에 한 줄로 적어 두세요. 그 한 줄이 오늘 하루 그 사람을 보는 마음의 각도를 분명히 바꾸어 줍니다
2. 단톡방이나 SNS에서 오늘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은 메시지를 작성하시게 된다면,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단 5분만 멈춰 보세요 — 그 5분이 추수 전에 곡식 한 포기를 보호하는 시간이 됩니다
3. 잠들기 전 휴대폰을 잠시 내려놓으시고 오늘 누군가에 대해 마음속으로 너무 빨리 결론 내린 한 가지를 떠올려 보세요 — 비난의 시간이 아니라, 내일은 그 사람을 한 번 더 두고 보겠다는 짧은 결심 한 줄을 적어 두시면 됩니다
✍️ 댓글로 아멘 한마디, 오늘의 QT 다짐을 나눠주세요! 함께 묵상하고 함께 성장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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