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8) '기억하는 일이 곧 신앙입니다 — 야다, 마음으로 아는 앎' (사사기 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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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QT4개월 전1📖 오늘의 본문 — 사사기 2:10-12 (개역개정)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 묵상 도우미
화요일 아침입니다. 한 주가 시작된 지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주일 강단 앞에서 받았던 그 마음이 벌써 조금씩 흐려지지는 않으셨나요. 회의실 의자에 앉으시면서 어제의 결심을 까맣게 잊고 똑같은 짜증을 내고 계실지 모르고, 지하철 안에서 멍하니 휴대폰만 들여다보다가 '어제 받은 그 말씀이 뭐였더라' 하며 머리를 긁적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일수록 더 자주 마주하시는 미세한 박탈감이지요. 분명 하나님은 일하셨는데, 그 흔적이 자꾸만 마음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은 그 느낌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사기의 가장 무거운 한 대목입니다.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이 차츰 무너져 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1장과 2장 사이에서 한 세대가 통째로 바뀐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의 기적을 두 눈으로 보고, 광야 40년을 만나로 살아내고, 요단강이 갈라지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그 세대가 다 죽고 나자, 본문은 이렇게 적어 둡니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2:10).
한 세대만 지났을 뿐입니다. 부모 세대의 그 생생한 신앙 체험이 자녀 세대에까지 가닿지 못한 것이지요. 같은 식탁에서, 같은 절기를 지내며 살았는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11절은 한 줄의 여백도 두지 않고 곧장 무너지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알지 못함과 떠남 사이에는 어떤 완충도 없습니다. 잊는 그 순간 곧바로 다른 신을 따라가는 자리에 서고 마는 것이지요.
여기서 히브리어 한 단어가 마음을 잡아챕니다. '알지 못하며'로 번역된 단어는 '야다'(ידע)입니다. 이 단어는 우리말의 '안다'와는 결이 사뭇 다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나 시험에 외우는 정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지요. 야다는 부부 사이의 친밀함을 묘사할 때, 친구 사이의 깊은 신뢰를 표현할 때,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인격적 만남을 그릴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야다는 '오랜 시간 살을 부대껴 온 가족을 알듯 아는 앎'이지요. 우리 어머니가 김치를 담그실 때 손맛을 어떻게 내시는지, 아버지가 기분이 안 좋으실 때 미간이 어떻게 일그러지는지, 그 결을 통째로 아는 앎 말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그렇게 '알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정보가 끊긴 것이 아닙니다. 관계가 끊긴 것이지요.
또 한 가지 짚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다음 세대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고 본문은 덧붙이지요. 여기서 '행하신 일'은 히브리어 '마아세'(מעשה)입니다. 손으로 빚으신 작품, 직접 이루신 사건을 가리키는 단어이지요. 출애굽, 홍해, 광야의 만나, 요단강의 마름 — 그 모든 구체적인 손길의 흔적입니다. 이 마아세가 흐릿해지는 순간, 하나님은 그저 '어딘가에 계신 분'이라는 모호한 관념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그리고 모호해진 하나님은 곧 다른 손에 잡히는 신, 손에 만져지는 우상으로 빠르게 자리를 내어주지요.
💬 최근 설교에서 만난 말씀
정동제일교회 천영태 목사님께서 지난 주일 사사기 2장 6-23절 본문으로 '경탄과 기억의 상실이 불러온 위기'라는 제목의 설교를 전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사사기의 가장 무서운 장면이 우상숭배가 시작된 그 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더 이상 경탄하지 않게 된 그 순간이라고 짚으셨지요. 처음에는 단지 무덤덤해질 뿐이었는데, 그 무덤덤함이 망각이 되고, 망각이 결국 다른 신을 향한 발걸음으로 흘러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목사님은 한 가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여러분은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에 진심으로 놀라 본 적이 언제이십니까.' 작은 일에도 경탄할 줄 아는 마음이 신앙의 가장 든든한 면역력이라는 말씀이 깊이 남았습니다. 어제의 은혜를 오늘 다시 떠올려 보는 짧은 한 박자 — 그것이 야다의 시작이며, 다른 신들을 향한 발걸음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를 잡아 주는 가장 작고도 단단한 띠라는 사실 말이지요.
🙏 오늘의 기도
하나님, 한 주의 두 번째 날을 열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저는 어제 받은 은혜를 오늘 너무 빨리 잊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일 강단 앞에서 흘렸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서는 평소처럼 짜증을 내고 평소처럼 사람을 미워하고 있었지요.
주님, 야다라는 그 깊은 앎이 제게 너무 멀어진 것 같습니다. 정보로는 하나님을 알고, 입으로는 하나님을 고백하지만, 실은 친밀한 그 자리에서 멀어진 채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경탄을 잃은 마음에는 결국 다른 무엇이 채워지더라는 본문 앞에서, 제 마음을 무엇이 채우고 있었는지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이 저를 위해 행하신 마아세 한 가지를 또렷이 떠올리게 해주십시오. 거창한 기적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어제 누군가에게 받았던 따뜻한 한 마디, 무사히 도착한 출근길, 가족이 건강하게 식탁에 앉을 수 있었던 평범한 저녁 — 그 모든 작은 자리에서 주님의 손길을 다시 알아보는 화요일이 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 말씀을 삶으로
- 출근길 또는 일과를 시작하기 전 5분만 시간을 내어, 어제 또는 지난 한 주 동안 하나님이 채워 주신 가장 작은 은혜 한 가지를 떠올리시고 마음속으로 또박또박 말해 보세요 — 그 5분이 무뎌진 마음에 다시 경탄의 결을 살려 줍니다
- 점심 식사 후 짧은 5분, 휴대폰을 잠시 내려놓으시고 오전 동안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 천천히 되짚어 보세요 — 별일 없었던 하루도 그 자체로 마아세이며, 그 마아세를 알아보는 눈이 곧 야다입니다
- 잠들기 전 노트나 휴대폰 메모장에 '오늘 하나님의 손길' 한 줄만 적어 보세요 — '동료가 도와주었다' '아이가 웃었다' 같은 짧은 한 줄이 쌓이면, 한 달 뒤 그 노트가 다음 세대에게 전할 가장 살아 있는 신앙의 증언이 됩니다
✍️ 댓글로 아멘 한마디, 오늘의 QT 다짐을 나눠주세요! 함께 묵상하고 함께 성장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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