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04/27) '사랑을 더하면 —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습니다' (골로새서 3:14)

매일QT4개월 전0
📖 오늘의 본문 — 골로새서 3:12-14 (개역개정)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 묵상 도우미 월요일 아침입니다. 한 주를 시작하시는 마음, 어떠신가요. 누군가는 주말 동안 마음 한 켠에 걸렸던 어떤 관계를 떠올리며 출근길 발걸음이 무거우실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지난주 단톡방에 올라온 그 메시지를 아직 답하지 못한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분명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잘 지내고 싶은 마음으로 한 주를 열지만, 막상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늘 어딘가 어긋나는 부분이 생기지요.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의 한 대목입니다. 골로새는 지금의 튀르키예 남서부에 있던 작은 도시였습니다. 양털과 자주색 염료 산업이 발달한 상업 도시였지요. 흥미로운 점은 바울이 이 교회를 직접 세운 적도, 방문한 적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양육한 동역자 에바브라가 골로새에 복음을 전해 교회가 세워졌고, 바울은 멀리 로마 감옥에서 그 교회의 소식을 전해 들으며 이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주후 60년경의 일이었지요. 당시 골로새 교회는 묘한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더 깊은 영적 경지'를 약속하는 가르침들이 들어와, 성도들이 신비한 체험과 까다로운 규례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한 것이지요. 바울이 보기에 이런 흐름은 결국 신앙을 머리만 무거운 학문이나, 손만 분주한 율법으로 뒤바꿔 놓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3장에 이르러 전혀 다른 비유를 꺼냅니다. '옷을 갈아입으라'는 비유였지요. 옛 사람의 옷을 벗고 새 사람의 옷을 입으십시오. 그 새 옷의 목록이 12절에 나옵니다.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그리고 13절에서는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는 일까지 덧붙이지요. 다섯 가지 덕에 두 가지 행동까지, 일곱 가지를 입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14절에서 바울은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얹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마치 옷을 다 입은 사람에게 마지막 띠 하나를 두르게 하시는 모습이지요. 여기서 헬라어 두 단어가 눈길을 끕니다. 먼저 '띠'로 번역된 말은 '쉰데스모스'(σύνδεσμος)입니다. '함께'라는 뜻의 '쉰'(σύν)과 '묶다'라는 뜻의 '데스모스'(δεσμός)가 합쳐진 단어이지요. 고대 의학 문서에서는 이 단어가 '인대'를 가리키는 전문 용어로 쓰였습니다. 우리 몸의 뼈와 뼈를 연결해 관절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그 가느다랗지만 질긴 결합조직 말이지요. 인대가 끊어지면 아무리 튼튼한 뼈라도 그 자리에서 무너지고 맙니다. 바울이 말하는 사랑이 바로 그 자리입니다.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 이 모든 좋은 덕목이 따로따로 흩어지지 않게 단단히 묶어주는 인대. 사랑이 빠지면 긍휼은 동정으로 식어버리고, 겸손은 자기비하로 비틀어지며, 오래 참음은 분노를 누르는 인내로 굳어집니다. 사랑이라는 인대 하나가 빠진 신앙은 결국 관절이 풀린 몸처럼 주저앉고 마는 것이지요. 또 하나, '온전하게'라는 말은 '텔레이오테스'(τελειότης)인데, 흠 하나 없는 완벽이 아니라 '본래의 목적에 도달함'을 뜻합니다. 사랑이 우리를 묶어줄 때 비로소 우리 신앙이 본래 가야 할 자리, 곧 '함께 사는 사람'으로 도달한다는 말씀이지요. 💬 최근 설교에서 만난 말씀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님께서 어제 주일 바로 이 본문으로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는 제목의 설교를 전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우리가 가진 좋은 자질과 능력이 아무리 많아도, 그 위에 사랑이라는 띠가 덮이지 않으면 결국 그 모든 것이 흩어지고 만다고 짚으셨지요. 사랑은 우리가 입은 모든 옷을 마지막으로 단단히 여며주는 한 자락의 끈이라고요. 목사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셨습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며, 사랑은 분위기가 아니라 행동이라고요.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 것만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상 사랑은 그 사람을 위해 한 걸음 먼저 움직이는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된다는 말씀이 마음 깊이 박혔습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새로운 한 주를 열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고백합니다. 지난 한 주를 돌아보면, 저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 애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워하지 않으려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결코 같지 않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 앞에서 깨닫습니다. 주님, 저는 좋은 옷을 입은 척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예의를 지키고, 가끔은 너그럽기까지 한 모습을 갖춰 입었지만, 그 모든 덕목을 단단히 잡아매 주는 사랑의 띠가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쉽게 마음이 풀어지고, 사람과의 관계가 자꾸만 어긋나는 자리로 흘러갔던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한 주, 제 안에 흩어진 좋은 마음들을 사랑이라는 띠 하나로 다시 묶어 주십시오. 미워하지 않는 자리에 머무르지 말고, 한 걸음 먼저 움직이는 자리로 나아가게 해주십시오. 단톡방의 메시지 하나, 사무실의 짧은 인사 하나, 식사 자리의 작은 양보 하나에서부터 사랑을 살아내는 한 주가 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 말씀을 삶으로 - 출근길 또는 등굣길에 가장 마음이 멀어진 한 사람을 떠올려 보시고, 그분에게 오늘 안에 짧은 안부 메시지 한 줄을 먼저 보내 보세요 — '잘 지내?' 한 마디가 끊어진 인대를 다시 잇는 첫 매듭이 됩니다 - 점심시간이나 회의 자리에서 누군가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거든, 속으로 한 박자만 멈추시고 '이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고 자신에게 한 번 일러 주세요 — 그 한 박자가 사랑의 첫 결단이 됩니다 - 잠들기 전 오늘 하루 가장 사랑이 부족했던 한 장면을 떠올리시고, 그 사람을 위해 30초만 기도해 보세요 — 미움이 풀리지 않더라도 그 30초가 내일 아침의 마음을 분명히 바꿔 놓습니다 ✍️ 댓글로 아멘 한마디, 오늘의 QT 다짐을 나눠주세요! 함께 묵상하고 함께 성장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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