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6) '시방은 가라 — 다음에 한다는 그 말이 위험합니다' (사도행전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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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QT4개월 전2📖 오늘의 본문 — 사도행전 24:25 (개역개정)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 묵상 도우미
오늘 하루를 되짚어 보시면, "다음에 하지 뭐"라고 미뤄둔 일이 몇 가지나 되시나요. 끊고 싶은 작은 습관, 어렵게 꺼내야 할 한 마디 사과, 그리고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서 부딪치고 있는 어떤 결단까지. 머리로는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행동으로 옮기려 하면 작은 핑계 하나가 슬쩍 떠오르고, 우리는 안도하며 그 일을 내일로 떠넘기곤 합니다.
본문은 가이사랴 감옥에서 벌어진 한 장면입니다. 주후 58년 무렵, 사도 바울이 유대 총독 벨릭스 앞에서 변론하던 시점이지요. 벨릭스는 정치적으로 매우 노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아내 드루실라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막내딸이었는데, 본래 다른 사람의 아내였던 그녀를 벨릭스가 부정한 방법으로 빼앗아 결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 앞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의 결혼 자체가 흔들리는 토대 위에 세워져 있었던 셈이지요.
바울은 이 자리에서 세 가지를 강론합니다. 의(義), 절제(節制), 그리고 장차 오는 심판. 첫 단어 '의'는 헬라어 '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η)인데, '관계가 바로 선 상태'를 뜻합니다. 비뚤어져 걸려 있던 액자를 정확히 수평으로 다시 맞추는 그림이지요. 두 번째 '절제'는 헬라어 '엔크라테이아'(ἐγκράτεια)로, 마부가 폭주하는 말의 고삐를 단단히 거머쥐는 장면에서 나온 말입니다. 단순한 자기관리가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욕망의 흐름을 의식적으로 잡아채는 힘이지요.
그리고 '장차 오는 심판'에서 '심판'은 헬라어 '크리마'(κρίμα)입니다. 본래 '나누다, 구별하다'라는 동사에서 나왔지요.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진실과 거짓을 정확하게 가르는 행위'입니다. 추수 때 곡식과 쭉정이를 골라내는 키질의 풍경에 가깝습니다.
이 세 단어 — 의, 절제, 심판 — 이 한꺼번에 강론되는 자리에서 벨릭스는 "두려워하였다"고 본문은 적습니다. 헬라어 '엠포보스 게노메노스'(ἔμφοβος γενόμενος), 직역하면 '두려움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표현이지요. 그저 살짝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깊은 호수에 발을 담그듯 잠겨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입을 열어 한 말이 묘합니다.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여기서 '틈'이 헬라어로 '카이로스'(καιρός)입니다.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크로노스, χρόνος)이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 기회의 때'를 가리키는 단어이지요. 그리고 카이로스에는 잘 알려진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붙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 조각 속 카이로스는 앞머리만 무성하고 뒷머리는 민머리인 모습으로 묘사되었는데, 지나가는 그 순간 잡을 손잡이가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벨릭스가 "다시 카이로스가 오면 부르겠다"고 말한 그 순간, 사실 그의 카이로스는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본문 27절은 차분하게 적습니다. "이태가 지나매" 벨릭스는 베스도에게 자리를 넘겼고,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고 바울을 그대로 가둬 두었다고요. 두 해 동안 벨릭스는 '오늘은 좀 그렇고, 다음에' 하면서 결단을 미뤘고, 결국 그 다음 카이로스는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 최근 설교에서 만난 말씀
한성교회 도원욱 목사님께서 지난 주일 바로 이 본문(사도행전 24:25)으로 '복음을 듣고도 결단하지 못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설교를 전하셨습니다. 목사님은 벨릭스가 결단하지 못한 까닭을 두 가지로 짚으셨지요. 하나는 손에 쥔 탐욕(바울에게서 뇌물을 받아내려는 미련)이었고, 또 하나는 부적절한 관계(드루실라와의 결혼)였습니다. 결국 그가 끊지 못한 두 가지가 그를 영원히 그 자리에 묶어 두었다고요.
목사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셨습니다. 우리 안에도 결단을 가로막는 '영적 드루실라'가 있다고요. 끊고 싶지만 끊지 못하는 어떤 관계, 떼어내고 싶지만 끝내 떼어내지 못하는 어떤 습관, 내려놓고 싶다 말하면서도 손에 움켜쥐고 있는 어떤 욕심. 그것이 우리 입에서 자꾸 "시방은 가라, 다음에"라는 말이 흘러나오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결단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끊어낼 것이냐의 문제'라는 말씀이 가슴 깊이 박혔습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오늘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제 마음 한구석에는 오랫동안 "다음에 하겠습니다"라고 미뤄둔 영역이 있습니다. 마음 깊이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결단의 자리에서는 늘 작은 핑계 하나를 만들어 그 일을 내일로 떠넘겼습니다.
주님, 제가 두려워했던 까닭은 사실 그 결단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그 결단을 내릴 때 함께 내려놓아야 할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끊지 못한 습관 하나, 정리하지 못한 관계 하나, 손에서 놓기 두려운 어떤 욕심 하나 — 그것을 여전히 붙잡고 있는 제 손을 오늘 주님 앞에 펼쳐 놓습니다.
오늘이 카이로스임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다음에"라고 말하는 순간, 그 카이로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두려움 안에 잠겼던 벨릭스처럼 자리를 피하지 말고, 두려움 안에서도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결단을 내리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 말씀을 삶으로
1. 종이를 한 장 꺼내서 "내가 '다음에'라고 미뤄둔 일 한 가지"를 적어 보시고, 그 옆에 작은 글씨로 '오늘 5분만'이라고 덧붙여 보세요. 결단 전체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5분이라는 짧은 첫 걸음이 카이로스의 문을 여는 손잡이가 되어줍니다.
2. 오늘 하루 입에서 "다음에 할게" "내일부터" 같은 말이 나올 때마다, 잠깐 멈추시고 "이것이 정말 다음으로 미뤄야 할 일인지, 아니면 지금 결단해야 할 일인지" 한 번 자신에게 되물어 보세요.
3. 자기 전 5분, 오늘 하루 동안 미뤘던 작은 결단 한 가지를 떠올리시고, 내일 아침 가장 먼저 그 일을 처리하기로 종이에 적어 침대 옆에 놓아두세요. 카이로스는 종종 '내일 아침 첫 행동'에 숨어 있습니다.
✍️ 댓글로 아멘 한마디, 오늘의 QT 다짐을 나눠주세요! 함께 묵상하고 함께 성장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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