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0) '흔들릴 때마다 — 소망이 향하는 곳' (시편 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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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QT4개월 전0📖 오늘의 본문 — 시편 42:11 (개역개정)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묵상 도우미
요즘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우셨나요? 출근길 지하철이든 강의실 뒷자리든, 주변은 모두 앞으로 달려가는 것 같은데 혼자만 길을 잃은 듯한 그런 날이 있습니다. SNS를 열면 친구들은 저마다의 성취로 빛나 보이는데, 내 자리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어색함 말이지요.
시편 42편의 저자는 '고라 자손'이라는 레위 지파 가문입니다. 본래 성전에서 찬양을 인도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이 시인은 지금 헐몬산 자락 먼 땅에 밀려나 있는 상태예요. 예배의 자리에서 멀어진 이의 깊은 탄식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슬픔을 혼자 삼키지 않습니다. "내 영혼아" 하고 자기 자신을 부르며 조용히 대화를 시작하지요. 감정의 파도에 그대로 휩쓸리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 자기 마음을 바라보는 것. 이것만으로도 꽤 단단한 영적 태도입니다.
원어를 잠깐 들여다보면 이 말씀이 더 가깝게 다가옵니다. '낙심하다'의 히브리어 '샤하흐(שָׁחַח)'는 본래 '몸이 땅으로 꺾여 늘어지다'라는 뜻이에요. 긴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현관에 가방을 툭 떨어뜨린 채 주저앉아 버리는, 바로 그 몸짓입니다. '불안하다'의 '하마(הָמָה)'는 폭풍우에 으르렁거리는 바다의 소용돌이를 가리키는 단어고요.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파도가 치는 그 상태, 오늘 우리의 마음과 참 닮았습니다.
그런데 이 혼란 속에서 시인은 놀라운 선택을 합니다. '소망을 두라'고 자기 영혼에게 단호하게 명령하는 것이죠. 여기서 '소망'의 원어 '야할(יָחַל)'은 낭만적인 기대가 아닙니다. 씨앗을 땅에 묻은 농부가 겨울을 견디며 봄을 기다리는, 인내에 가까운 단어예요. 지금 당장 답이 보이지 않아도, 그분의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 최근 설교에서 만난 말씀
시광교회 이정규 목사님께서 지난 주일 마가복음 설교에서 "나는 왜 방황하는가"를 나누셨습니다. 우리가 방황하는 이유는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그분께로 돌아가기를 미루기 때문이라는 말씀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시편 42편의 시인처럼, 방황의 끝은 결국 '여전히 찬송하리라'는 고백으로 향해야 합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솔직히 요즘 제 마음은 잔잔한 척했지만 속은 파도가 치는 바다 같았습니다. 해야 할 일은 쌓여 있는데, 정작 제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낙심과 불안이 다시 찾아오는 순간, 그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제 영혼에게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해줄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지금 보이지 않는 답, 끝나지 않는 기다림 속에서도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 말씀을 삶으로
1. 마음이 무거워질 때 스스로에게 "내 영혼아, 너 왜 그러니?"라고 한 번 물어보세요. 감정과 거리를 두는 작은 연습입니다.
2. 잠들기 전 5분, 휴대폰을 내려놓고 오늘 하루 중 '하나님이 나를 도우셨던 한 순간'을 떠올려 노트에 한 줄 적어보세요.
3. SNS 피드를 닫고, 오래 연락 못 했던 한 사람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보세요. 내 영혼을 돌보는 방법은 타인의 영혼을 돌보는 일과 조용히 이어져 있습니다.
✍️ 댓글로 아멘 한마디, 오늘의 QT 다짐을 나눠주세요! 함께 묵상하고 함께 성장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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